벌써 1년. 외면일기


 오디오 편집은 굉장히 섬세하고, 어떤 면에서는 더 난해하기도 하다. 
 컷이 파형으로만 그려져 있으니 한참 듣다보면 어떤 말이 어느 지점에서 위치하는지 찾기도 어렵다.  

 눈으로 보지 못했던 말과 말 사이의 어떤 감정이
 헤드폰을 통해 확 스며올 때가 있다.
 특히, 슬픔의 감정 같은 건 진폭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왜 보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슬픈 걸까.   

 편집기 앞에 앉아 2014년 4월 16일, 17일, 18일의 뉴스를 쭉 들었다. 

 눈물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음을 배웠다. 
 속끓는 울음,이란 문자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단전부터 끓어올라 폭발하는 슬픔은 
 파형으로도 다 그려지지 않는 긴 여운이 남았다.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이 훨씬 많았다. 
  이를테면, 
  희망의 소식을 전하고 싶은 한 '사람'의 마음과, 
  팩트를 알려야 하는 '기자'의 마음이 충돌하는 순간-  
 '크레인이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저 배 안에 실종자들이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목이 메어오는 찰나의 울컥과, 깊은 숨.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그 마음을 듣다가
  콧등이 시큰해져서 헤드폰을 벗었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발이 있어도 가지를 못하고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속으로 작게 분노하고
 뭐라고도 못하고 이렇게 밥벌이를 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
 
 시인의 말대로 숨쉬기도 미안한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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